추석이 되어 6살인 어린아이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탄다. 기차에 올라타 아버지에 의해서 자리에 않은 어린아이는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딱히 할일도 없었거니와, 저 멀리에서 범상치 않은 일아 벌어지고 있는 듯 해서였다. 짙은 곤색의 제복을 입은 사람이 기차 칸에 반대편의 문을 통해 등장하더니, 기차내의 한사람 한사람에게 무슨 말을 걸기 시작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사람과 짧은 대화를 마친 후에 바지 주머니나 윗도리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서 그 사람에게 건내 주는 것을 본다. 얼핏보니 아버지가 기차에 오르기 전에 구했던 기차표인 듯 하다. 제복을 입은 사람은 -- 훗날 어린아이는 이 사람을 차장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안다 -- 그 기차표에 구멍을 내서 다시 돌려준다. "아버지는 어떻게 할까?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치지만 큰 문제는 아닐 듯 싶다.
그런데, 차장이 어떤 한 노인과 유난히 긴 이야기를 한다. 노인은 오래된 갈색 양복을 입었는데 수천번은 다림질을 해서 그런지 반짝반짝하게 윤이 나는 듯도 하다. 셔츠는 흰색이기는 하지만 꼭 흰색이라는 생각이 안들정도록 가지런하지 못하다. 아마도 타이가 없어서이기 때문인 듯 하다. 노인의 얼굴은 다른 사람과 달리 유달리 검게 그을럿는데 모자를 썻던 챙의 자국이 선명하고 동르랗게 둘러져 있는 것을 보니, 평상시에는 모자를 쓰는 듯 하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차장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기차에서 내리는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힐끗 살피고는 기차에서 내린 할아버지의 걷는 뒤모습을 차창을 통해서 살펴본다.
아마도 어린아이는 이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아버지에게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을 기억장치에 입력을 하였을 것이다. 입력된 내용은 무엇일까? 바로 그 할아버지와 바로 그 차장일까? 몇년 몇월몇일의 그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것일까?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오히려 이 아이는 "차표를 검사하는 사람" "차표를 사야하는 사람(기차이용객)" 그리고 그 사이에 걸린 규칙 등등을 추상화해서 느슨하게 혹은 루즈(loosely)하게 기억하고는 이를 사회적 지식으로 활용할 것이다. 여기서 "차표를 검사하는 사람"은 이 아이가 경험한 그 차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이 후에 보게 될 검사원도 아닌, 그 어떤 것으로, 이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만들어 놓은 그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 . .